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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lage drawing

동네 드로잉

 

<동네드로잉> 전시는 12월에서 5월까지 행궁동 벽화마을을 오가며 그린 회회 10여점과 드로잉들을 선보인다.
행궁동 벽화 마을은 문화재 보호로 개발이 제한되어 주민들이 떠날 준비를 하던 곳이다. 그러던 마을에 예술가들이 벽화를 그리고 주민들이 한 마음이 되어 골목을 가꾸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나는 사라짐을 극복한 이 마을을 그리고 기억하고 싶었다. 내가 본 행궁동은 생명체처럼 정체되지 않고 변화했다. 계절에 따라 다른 옷을 입어가듯 올 때마다 달라진 것이 보였다. 이번 작업을 통해 변화는 사라짐이 아니라, 이어짐이라는 것을 마을을 오가며 깨달았다.

행궁동 드로잉지도

‘사라져가는 주변에 관한 이야기’

 

나는 수많은 것들 가운데서 과연 무엇을 그리는 사람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나의 주변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선택한 사물과 풍경들은 ‘낡고 허름하거나, 시들어 가는 것들’이었다. 내 주변은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떠나거나 버리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기 전까지 알지 못했었다.

내가 어릴 적 아버지는 버리는 것에 상당히 예민한 사람이었다. 간혹 어머니가 무엇을 버리기라도 하면 늘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그 탓에 버리면 나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 모든 것을 버리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내가 그런 사물과 풍경을 그리는 이유는, 소중해서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버리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나면, 버리거나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은 획들로 이루어진 미지의 공간 안에 그것을 그려 놓으면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그것은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 만들어져 갔다.

처음에는 곧 사라질 풍경과 사물을 붙잡아 두고 싶다는 생각에서 그렸다. 그리다 보니 그 장소나 사물이 실제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더 이상 허름하고 버려질 안타까운 것이 아니었다.

 

2014년 작업은 개인적 트라우마(trauma)와 관련된 ‘버리지 못한’ 사물에 관한 것이라면, 2015년 이후의 작업은 ‘떠나지 못한’ 것에 초점을 맞춘다.

 

나는 한 동네에서 20년 넘게 살았다. 스스로를 가두어 둔 것도 아닌데, 떠나지 못했다. 익숙함도 좋았지만 떠나는 것이 두려웠다. 내가 그래서 인지 그리려고 찍은 사진 대부분이 닫혀 있거나 막혀있는 곳들이었다. 지난 1년 동안 내가 사는 동네와 자주 가는 동네, 그리고 처음으로 여행한 부산의 동네를 사진에 담았다. 헌데 막상 사진을 보면 내가 찍은 그곳들은 모두 한 동네 같다. 익숙함만 쫓았던 것이다.

이제 그 동네들은 ‘떠나지 못한 곳’에서 ‘떠날 수 밖에 없는 곳’이 되어가고 있다. 즉, 사라지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동네들이 사라지기 전에 평범하지만 다시 만들 수 없는 풍경인, 그곳을 내 공간 속에 새로 담는 작업을 한다. 내가 떠나지 못했던 공간들은 그려짐으로써 기억 속에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진다. 나의 작업은 내가 가진 트라우마에 관한 극복이자, 동시대에 주변에 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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